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조회 수 76 추천 수 0 2018.09.06 01:12:18

Q1BPNCx.jpg

 

여행자를 위한 서시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 가야 하리.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5 처음부터 새로 소리새 2018-09-26 1918
134 사랑하는 이여 소리새 2018-09-25 811
133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소리새 2018-09-25 1158
132 서두르지 않는 소리새 2018-09-24 1030
131 내 쓸쓸한 날엔 소리새 2018-09-23 860
130 그대 앞에 서면 소리새 2018-09-23 286
129 그대 영혼의 반을 소리새 2018-09-23 176
128 어두운 물가 소리새 2018-09-22 271
127 얼굴 묻으면 소리새 2018-09-22 287
126 물처럼 투명한 소리새 2018-09-22 362
125 땀으로 땅으로 소리새 2018-09-21 170
124 눈부신 이 세상을 소리새 2018-09-21 169
123 가만히 서 있는 소리새 2018-09-21 281
122 이제 해가 지고 소리새 2018-09-21 542
121 귀뚜라미는 울어대고 소리새 2018-09-20 353
120 별 기대 없는 만남 소리새 2018-09-20 462
119 저무는 날에 소리새 2018-09-20 144
118 기억하시는가 소리새 2018-09-20 384
117 소리 듣고 소리새 2018-09-19 169
116 빛나는 별이게 소리새 2018-09-19 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