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길 산책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빗방울길
돌아보니
눈길처럼 발자국이 따라오고 있었다.
빗물을 양껏 저장한 나무들이
기둥마다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 그친 뒤
더 푸르러지고 무성해진 잎사귀들 속에서
젖은 새울음소리가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
그래도 발바닥 밑에서는
빗방울 무늬들 부서지는 소리가
나직하게 새어나왔다.
비온 뒤
빗방울 무늬가 무수히 찍혀 있는 산길을
느릿느릿 올라갔다.
물빗자루가 하나절 깨끗이 쓸어 놓은 길
발자국으로 흐트러질세라
조심조심 디뎌 걸었다.
마음속의
내 손에 들려진 신비의
단풍보다 진한 빛깔로
사랑이란 생각조차
꽃잎 지던 날
들고 있는 번뇌로
그 모든 슬픔을
내가 느끼지 못한 것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오늘 하루
우리 이런날
꽃나무 하나
한가지 소원
한 순간 가까웁다
이 세계의 불행
오지 않는 사람
항상 당신이 어디에
내 안에 그대 살듯이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그저 세월이라고만